"활동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게 아니라 꺼내보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어요."

내 활동 설명서 만들기 

<내 활동 설명에 노련한 사람 되기: 내활노사>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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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나요? (저만 어렵나요?) <내 활동 설명에 노련한 사람 되기: 내활노사>는 기록을 통해 내 활동을 들여다보고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 활동 설명에 노련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모임 호스트 김경민님과 <내 활동 설명서 만들기> 과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내 활동 설명에 노련한 사람 되기 : 내활노사> 모임이 마무리되었네요. 참여해주신 활동가분들이 끝나고도 가방을 천천히 챙기면서 계속 이야기하시는게 인상깊었어요(웃음). 그 동안 모임이 어떻게 운영된건지 궁금해요.

 

2주에 한 번씩 만나서 질문을 두 가지씩 드리고 이야기 나눴어요. 활동을 시작한 이유와 왜 아직도 하고 있는지 지속의 이유도 질문해보고요. 내가 활동가로서 잘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준비했고요. 각자 답은 미리 준비해서 나눈다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수다를 나눈거죠.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대답할걸’ 하는 것도 있었고요(웃음).

 

모임은 수다떨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꾸리고 다음에 만나기 전까지 2주 동안 수다떤 내용을 토대로 글을 쓰는 식으로 운영했어요. 각자 연재처 구글 문서를 열어두고 자기 질문에 답을 하게 되는데요. 이야기를 나눈 후에 좀 더 정리해서 글로 쓰게 되니 정리가 잘 되기도 하면서 수다 떨고 쓰고 수다 떨고 쓰는 과정이었어요.

 

‘연재처’라고 이름 붙인게 인상적이네요. 뭔가 ‘쓰는 사람’이 되는 기분일 것 같아요.

 

모임에서 질문에 답하기 전에 각자 메모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포스트잇을 사용하지 않고 한 문단 노트를 활용했어요. 노트에 먼저 손으로 써보고 대화하고 집에 돌아가서 그걸 바탕으로 길게 써보는거죠. 물론 그 메모를 옮겨 적을수도 있고요(웃음).

 

모임을 같이 잘 마무리하고 회식 일정을 별도로 잡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경민님이 배려왕이어서 그런가요?(웃음)

 

마지막에 가장 아쉬운 상황에서 말을 꺼내보고 싶었어요(웃음). 2,3회차는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도 했고요. 또 저희 모임에서는 <내 활동 설명서>가 모임 끝나고 나오니까 자연스럽게 실물본도 받아보고 축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모임을 함께 기획할 때 일기광이라고 말씀해주셨던게 기억나요. 소개 키워드에도 ‘쓰는 사람’을 주셨고요.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출발한 모임인가요?

 

전형적이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문법으로 자기 일을 설명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비영리 영역에서 일하는게 단순히 ‘좋은일 하는 사람들’로 인식되는게 아쉽기도 하고 어떨때는 너무 긴장되기도 하고요.

 

조직 차원에서 일을 정돈하고 기술하는 것도 있겠지만 활동가 모임으로 무엇을 해보면 좀 더 내 활동을 잘 설명할 수 있게 할까 생각해보니 마침 제가 쓰는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쓰고 기록하면서 정리되는 느낌의 장점을 잘 알고 있어서 그 간의 경험으로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활동가들이 수다도 떨고 글도 쓰면서 자기 활동을 잘 정리해보고 의미를 발견하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었죠.

 

<내 활동 설명에 노련한 사람 되기>라는 제목을 보면 활동 설명에 노련해진다는게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지는데요.

 

두 번째 모임 정도 해보니 불현 듯 ‘다들 설명을 너무 잘하시고 나는 다 이해가 되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은 친밀감이 높아지긴 했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잖아요. 두 번 만난거고요. 근데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너무 이해가 되고, 과제로 작성한 글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가치를 위해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리스펙도 생기더라고요.

 

기획 당시에는 뭔가 활동의 가치를 같이 발견하고 이름 지어주는 역할이나 책임이 필요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각자의 활동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설명이나 표현을 잘 못해서 모인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죠. 활동의 의미를 찾으려는게 모임 제목인데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웃음),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뭔가를 발견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되새겨볼 시간이나 공간, 수다떨 친구가 없는 상황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하는 일의 의미는 잘 알고 있지만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결재서류랑 영수증만 보다와서 부분적으로 느껴진다거나, 너무 간접적인 기여처럼 느껴지고 지루할 때, 뭔가 되새길만한 것이 없어서 힘든 것 같아요. 비영리섹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변화를 만들고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한데 막상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나? 하는거죠. 그래서 모임에서는 너무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의 의미를 서로 다시 꺼내보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남에게 설명을 잘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활동 의미를 자주 들여다보고 현타에 빠지지 않게 하는거죠. 서로 으쌰으쌰하면서 나라는 활동가를 존중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요.


글쓰기 스킬에 관련된 모임이라기 보다 질문을 던지고 정리해보게 하는 방식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맞아요. 글쓰기 스킬은 아무것도 안가르쳐줘요(웃음). 그래서 마지막 모임에서는 거창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자기 분야 밖으로도 많이 이야기하고 떠들어서 내 활동의 의미나 면모를 사람들에게 잘 말해주자! 이런식으로 생각이 바뀌기도 했어요. 좋은 결론이죠(웃음). 나 자신을 포함해서 같은 길을 밟아올 동료 활동가를 위해 약간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야기하자고요.

 

제가 경민님과 대화하며 느낀건 너무 다정한 사람이고, 의미를 잘 읽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모임 운영 방식이나 진행 내용에 어떻게 반영되었을지 궁금해요.

 

말 그대로 느슨했던 것 같아요. 과제도 허들을 낮추고요. 아마 글쓰기도 더 요구했으면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분들이라는걸 잘 아는데 일과 중에 뭘 더 하는게 어려운 사람에게 초점을 맞췄어요. 대충대충의 마음으로 와도 4번 모임 날짜만 빼놓을 수 있으면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쉽게 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또 이야기 나눈 걸 바탕으로 쓰는거라 어렵지 않았던 것도 있고요. 모임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데 신경쓴 것 같아요.

 

<당신 옆의 활동가>는 커뮤니티 개념을 모임으로 구현해보았는데요. 활동가들에게 모임이 왜 필요한걸까요?

 

진짜 왜 필요할까요? 진짜 필요하다는 생각을 마지막 모임 마치고 개인적으로도 일기도 썼어요. ‘정확하게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정말 필요하다!’고요(웃음).

 

한편으로는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자기를 잘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나요. 타인의 존재라는 게 내가 생각도 못했던 지점을 발견해주기도 하고 공감해주기도 하니까요. 특히 모임을 통해서는 비슷한 공감대 속에서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거니까 그 속에서 서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조직 밖 동기모임 같은 느낌도 있고요. 연차나 나이와 무관하게 공감대를 만들수도 있는 것 같아요.

 

모임의 호스트 역할을 맡아본 경험은 어땠나요? 이전에도 이런 모임을 많이 진행해보셨나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요(웃음). 당연히 ‘어떻게 진행하지’ 이런 고민을 매번 했던 것 같아요. 귀중한 시간을 내서 참여하는 만큼 더 의미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글을 더 잘 쓸 수 있게 설계했어야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고. 처음이어서 그런지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제가 하고 있는 사업과 같은 포맷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보니 약간의 긴장과 책임감은 있었던 것 같아요.

 

좋았던 건 저도 참여자의 한 사람으로써 다른 활동가를 짧은 기간 동안 사귀게 된거에요.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눈앞에서 만난다는 게 저에게 주는 위안도 있었고요. 개인적으로는 뭔가 노동시간이 아닌 것으로 이 시간을 보낸다는 게 엄청 만족스럽더라고요.

 

<내 활동 설명서>는 언제 받을 수 있나요?

 

내 활동 설명서는 여러 명이 보는게 아니고 각자의 책이기도 해서 셀프 맞춤법 검사를 하실 수 있게 가이드를 드렸어요. 아마 좀 더 내용을 덧붙이거나 수정하시는 작업이 진행될거고요. 마지막으로 오타 정도를 제가 수정하고 인디자인에 얹어서 간단하게 편집하려고요. 회식 때 증정식을 하려고 하고요(웃음).

 

모임에서 만난 활동가들, 진짜 당신 옆의 활동가를 자랑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함께 한 활동가들로부터 어떤 인사이트를 얻었는지 궁금해요.

 

여성, 장애인, 기후위기, 교육 이런 아젠다나 분야로 생각하면 너무 커다랗고 그 커다란 것 중에 어떤 부분을 도려내서 조직이 담당하는게 있고 그 조직 안에서 개인인 내가 무엇을 기여하나 이런 연결감을 갖기가 어려울 수 있잖아요. 모임 주제랑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요.

 

어떤 활동가분이 “한 켠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얘기해주셨던 게 기억나요. 내가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모든걸 해줄 수 없다고 해도 사회 문제의 한 켠을 변화시키기 위해 책임지는 마음으로 임하고 그게 모이면 사회는 더 나아진다고요. 그런 점에서 내 활동이 의미 있고 스스로 다독인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너무 멋진말 아닌가요?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당신 옆의 활동가> 다음 시즌이 생긴다고 하면 다시 모임을 열어볼 마음이 있으신가요? 커뮤니티를 지속하기 위해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게 뭐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모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모임이 많이 생기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면 좀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제가 할 필요가 없으면 더 고맙죠:D)

 

모임해보니까 모임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많을 것 같아요. 저도 모임에서 계속 그랬거든요. “다 할 수 있다.”, “다음 모임을 꾸려달라”, “야너두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런 얘기요(웃음). 일하는 엄마로 활동할 때 에너지를 내는 법 이런 수다모임도 얘기하고 영화 전공을 살려보는 모임 얘기도 해보고 그랬어요. 다들 너무 잘하실 것 같아요. 그걸 할 수 있게 뭔가 넛지하는 것만 잘 있으면 충분히 다들 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