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렇게 뿌리 내리고 있어

고사리

.

재개발단지에서 식물을 구조한다고? 이렇게 멋진 활동이 있었단 말인가!! 감탄하며 열었던 <체험! 삶의 식물 : 도심 속 식물 친구 만나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알면 보인다'는 간단한 문장을 온 몸으로 체험하게 된 시간이었는데요. 모임에 늘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고사리님의 다정한 글을 만나봅니다🤸   


2년 전이다.

좀 아팠다. 지탱해 줄 무엇이 필요했다.

반려동물을 키우기에는,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어서나 집에 들어오고 주말 중 하루는 출근할 수도 있었기에 책임감이 두려웠다. 눈이 간 곳은 식물이었다. 사는 동안 한 번 정도 가봤을 양재동 꽃시장을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찾았다. 그리고 작은 바질 트리 한 그루를 들였다.


2021년 키우던 바질 트리. 무관심 속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북향임에도 볕이 꽤 들고 바람도 잘 들어오는 외부 베란다에서 바질 트리는 잘 자랐다. 두세 번은 따서 샐러드에 넣어 먹기도 했다. 바질 트리는 무럭무럭 컸다. 집에서 밥해 먹는 횟수는 바질 트리의 양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잎을 따지 않으니 꽃을 피웠다. 어느 날 꽃이 잎을 덮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픔이 점차 회복되면서 바질 트리를 향한 관심도 낮아졌다. 가끔은 물 주는 일도 잊고 마음대로 자라도록 두었다. 결국, 겨울에 실내로 들여놓는 시기를 놓쳤다. 힘든 시기 나의 첫 번째 반려 식물이라며 함께 했던 바질 트리와 이별했다. 나라는 사람은 식물 키우기 ‘똥손’ 임을 또 한 번 깨달아야 했다.

 

식물을 키우지 않는 것이 식물들 삶에 도움이 된다는 나름의 명분 속에, 바질 트리 이후 베란다는 택배를 받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던 차 2023년 여름, ‘체험! 삶의 식물 : 도심 속 식물 친구 만나기’ 프로젝트를 보았다. 도심 속 식물 친구를 만나고 재개발 단지 유기 식물을 구조한다는 내용에 2년 전 헤어진 바질 트리를 떠올렸다.

 

“나에게 속죄할 기회를 주는 것인가?” 싶었다.

식물유치원 졸업식은 뭐지? 궁금증도 일었다. 처음 들어본 ‘사화 정원’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비가 퍼붓던 7월 13일 첫 모임이 열렸다. 이번 활동에 오게 된 이유, 식물유치원은 어떻게 탄생했나 등등 일터에서 쉽게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뭔가 다들 고수의 풍미가 전해졌다. 장마가 물러설 무렵 재개발 지역에서 식물을 구조하는 행동에 나섰다. 드.디.어!

 

두 번째 모임에서는 직접 식물 구조 활동을 했다. 재개발 지역을 이렇게 깊게 본 적이 있었던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 감나무, 포도나무, 버들, 단풍, 담쟁이, 나팔꽃 그리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풀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것 봐, 우린 이렇게 뿌리 내리고 있어!” 보란 듯 말해 왔다.


포도는 풍성하게 열렸고 제철을 기다리는 감나무는 무성했다. 가을에 혹시라도 이곳이 남아 있다면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재개발될 지역에서 나무와 풀과 꽃이 거침없이 자라고 있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포도는 열매를 맺었고(가운데) 

이삿짐 스티커만 남은 문 앞은 풀들이 아트워크를 했다(오른쪽)



이렇게 든든하고 튼튼한 아이들이 개발을 위해 싹둑! 잘려 나간다고 생각하니 공허함이 몰려왔다. 짧게는 1여 년 길게는 수십 년을 그 집에서 자랐을 꽃과 나무와 풀들이 개발을 이유로 속절 없이 쓰러져야 한다니… 아래 지역 어딘가에 버려지는 나무를 키워주는 곳이 있다던데… 재건축에 들어가는 여의도 아파트 안의 수령 깊은 벚나무도 콘크리트 철근 더미에 쓸려가겠구나… 생각이 여러 갈래를 뻗치던 중, 전봇대와 버려진 여행 가방 사이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사랑초를 구조했다. 사랑초도, 자세하게 보기도 처음이었다.


구조 전의 사랑초(왼쪽). 아무런 보호막 없는 흙무더기 속에서 맹렬하게 자신을 키워냈다. 

데려온 첫날 뿌리별로 컵에 담아 적응기를 갖도록 했다.



구조 뒤 가져온 사랑초는?

흙에 심은 아이는 꽃을 피우고 화장실에 두었던 아이는 안타깝지만 얼마 전에 정리했다. 햇빛을 좋아하는 사랑초에게 화장실 볕은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미안하다. 식물유치원 졸업식에서 데려온 섬초롱꽃과 채송화는 잘 크고 있다. 출근할 때마다 상태를 살피고 매주 일요일은 물 주는 날이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 좋다고 해 흙이 말랐는지 확인도 한다.

 

여전히 나의 똥손이 두렵다. 쌀쌀함이 느껴지니 바질 트리를 보냈던 때도 떠오른다. 일과 삶을 우선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사랑초와 섬초롱꽃, 채송화를 잃을까 불안하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해본다. 삶이 오르막과 내리막의 씨줄 날줄이듯 내 삶의 식물도 그럴 수 있다고 격려하면서.


7월 말 구조해 온 사랑초가 꽃을 피웠다(왼쪽). 쑥쑥 크는 식물유치원 졸업생, 울릉도 자생 토종 식물 섬초롱꽃


에필로그

도심 속 식물 친구 만나기 뒤,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거리에서 청계천에서 산책로에서 산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꽃과 나무, 풀을 눈여겨보게 된 것. 이전에는 지나쳤을 그들에게 궁금증이 폭발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청계천은 나팔꽃이 지천이었다. 이전에 같은 시기 청계천을 걸었을 때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한다.

 

유기 식물구조를 매개체로 공익활동이 가능함을 알게 해주신 백수혜 작가님과 나혜수 매니저님, 같이 삶의 식물을 체험한 모임원 분들께 글을 빌려 인사드린다. “함께 해 영광이었습니다.”


 청계천에서 만난 나팔꽃. 타고 올라갈 벽이 없어도 주위 풀을 지지대 삼아 꽃을 피웠다.






고사리

안이를 뿌리치는 모험심을 잃지 않으려는 서울 토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