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기후미식가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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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떻게 먹고 있나요? 오늘 하루 나와 지구를 위해 먹은 음식이 있었나요?😃 기후미식클럽에서는 지구에게 다정한 기후미식가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활동을 했습니다. 민들레님의 글을 통해 여러분도 기후미식가에 좀 더 가까워져 보세요! 



누구나 친절한 사람을 좋아한다. 친절에는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에너지가 있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듯, 너도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단단한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채식을 실천한 건 대학 마지막 학년인, 4학년 때부터였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3학년부터 시작된, 그리고 죽음의 학년인 4학년을 보내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 가 없었다. 늘상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잤는데도 얼굴에 여드름이 빽빽히 나고, 위인지 식도인지 알 수 없는 곳이 자주 쓰렸으며,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자주 어지럽고, 무기력했다.

 

당시엔 진심으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러 피부과, 내과, 소화기내과 등을 전전하고 수많은 약들도 먹어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계속해서 로아큐틴과 위산억제제를 먹을 수는 없었다. 약을 거의 1년 넘게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로 스트레스, 인간관계 스트레스, 학업 스트레스에 계속해서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나 괜찮은데? 나 열심히 하고 싶어. 좋은 데 가서 성공하고 싶어’는 마음이 컸고 밤을 새고 커피를 낮과 밤을 구별하지 않고 마셨다.

 

우리 기숙사는 코로나로 학식이 제공되지 않았다. 음식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었다. 여기서 있는 음식이란 라면, 편의점, 치킨, 피자, 햄버거였다.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만 찾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단 게 땡겼다. 달달한 케익이나 빵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가시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건강이 바닥을 쳤다.

 

그런데 우연히 채식에 관한 레시피 책을 보게 되었다. 자신도 한평생 건선에 시달린 사람이었고, 원인을 알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제일 앞에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그 책을 집어들었다.

 

사실 내가 채식을 시작한 계기는 동물권 때문도, 기후 때문도 아닌 나 때문이었다. 그 점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나 자신에게 친절해야만 동물에게도, 기후에게도 친절할 수 있음을 안다.

 

호기롭게 <당신 옆의 공익활동> 기후미식클럽을 신청했다. 신청자가 많을 거 같아 불안했지만 다행히 모임 초대 문자와 메일이 왔다. 사실 그동안은 나 혼자 채식을 실천해 오느라 여러 궁금증이나 어려움이 있던 차였다. 이곳에서 만날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생각보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 놀랐다. 그곳에는 이미 요리에는 도가 튼 프로 주부님도 계셨고, 모임 때는 자신이 비트와 당근, 글루텐 프리 빵(!)을 가져오는 창의력 넘치는 분도 있었다. 나는 20대였기 때문에, 그분들의 내공 넘치는 레시피를 듣고 있노라면 조금 어지럽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눈을 반짝이며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서툴고 부족했던 채식 이야기에도 모두가 친절한 미소와 박수를 보냈다. 덕분에 매주 따뜻한 목요일을 보냈다.

 

모임에는 <기후미식>이라는 이의철 작가님의 책을 매주 일정량 읽어오는 숙제가 있었는데, 지금처럼 먹으면 지구가 3개 필요하다는 작가님의 말이 마음을 쿡쿡 찔렀다. 내가 먹음으로 인해서, 지구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책에서는 단지 비건에서 멈추지 않고 ‘자연식물식’을 하길 권했다. 자연식물식이란 가공이 덜 된, 자연 상태에 가까운 식물성 식품만으로 구성한 식단을 뜻한다.

 

우리는 매일 식단일기를 쓰면서 얼마나 기후미식을 실천했는지 기록했다. 지금 당장 오늘 뭘 먹었지 라고 생각해보면 식단은 잊어버리기 쉬운 기억이다. 첫 기록 페이지보다 마지막 기록 페이지에서 모두들 더 나은 식단을 실천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마지막 모임날에는 각자 기후미식을 위한 음식을 가져와 나누어 먹는 미식회를 가졌다. 모두가 아이디어가 넘치는 음식들이었다. 토마토가 들어간 비건 물김치, 비건 카레 등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지만 정말 다 맛있었다. 나는 디저트로 먹을 비건 파운드케이크를 들고 갔다. 식사가 다 끝나고 먹어서 너무 많은가 싶었지만 다 먹어버렸다.


 채식을 실천하면서 몸은 점점 좋아졌다. 하루게 다르게 컨디션이 나아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친절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해야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나를 몰아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이어트, 건강식, 식단, 단백질, 영양제, 프로틴바, 무설탕, 글루텐 프리

 

현대인이라면 모두 다 한번쯤을 들어봤던 단어일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21세기에조차 먹는 것이 문제이다. 아마도 먹는 것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문제일 것이다. 누구나 본인의 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음식을 보았을 때맛, 위생, 양, 향 다양한 것으로 그 음식을 파악하고, 그것이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아마도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이 음식이 ‘어디서’왔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은 좀 낯설지도 모르겠다. 조금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비건에 대한 얘기라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뉴스나 칼럼에서 보던 비건들을 보면서 고양이도 참치를 먹는데 사람이 동물을 먹는 게 적어도 ‘이상한’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잡식성으로 진화했으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상한 경험을 하나 했다. 여행을 가서 푸아그라가 유명하다는 식당에 들어갔다. 주변 사람들이 다 그것을 시키고 있었다. 어쩐지, 나는 그것을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도저히, 도저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먹고 있어도, 어디선가 보았던, 아마도 어떤 다큐에서 거위에게 억지로 사료를 먹이고 있는 장면이 자꾸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좀 이상한 것은, 그 다큐에서 돼지도 나오고 소도 나왔는데 왜 오리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칼날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날 나는 결국 푸아그라를 먹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엄마랑 밥을 먹으며 엄마의 지인 분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분은 소를 키우셨는데, 그분은 소고기를 먹지 못하신다고 한다. 소는 자기가 죽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날에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소는 도저히, 도저히 먹지 못한다고 말이다. 조금 재미있는 것은, 그분은 돼지고기는 먹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저마다 자기 내면에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른, 조금은 먹먹한 부분이 각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분이 소를 먹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푸아그라를 먹지 못하는 것은 모순으로 가득차 있기는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아빠는 개고기를 실수로 먹고선 토한 적이 있고, 나도 고양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고양이 고기가 눈앞에 있으면 소스라칠 것 같고, 세상에 모둔 고기를 먹기를 포기한 비건 같은 사람은 아마도 모든 고기에 대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다만 비건들은 우리보다 공감의 폭이 더 넓은 것이겠지.

 

내가 먹는 것이 이름이 무엇이고 어디서 왔고 어떤 모양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쩌면 조금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제 조금씩 생각해보려고 한다. 동참해주는 나의 친절한 기후미식가들과 함께 말이다.



민들레